2020-10-27 Tue
 
레미콘 사상 유례없는 ‘고난의 행군’ 어디까지
2020-10-05 10:48 16


일감절벽에 코로나로 대면영업 못해 수주난 가중
레미콘 공장 헐값 매물로 나와 

역대급 장마에 건설현장 공사 지연 
매출급락에 월평균 수입도 21% 내리막

레미콘 업체가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유례없던 긴 장마 등의 여파로 올 3·4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최소 30~40%, 많게는 50% 이상 빠지면서 그야말로 고난의 행군 중이다. 최성수기로 분류되는 9~11월에 여름 부진을 만회해야 하지만 궂은 날씨와 사회간접자본(SOC) 공사도 예상보다 밀리면서 속 앓이가 커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레미콘 업체들이 각종 악재 속에 좀체 반전의 모멘텀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레미콘 업체들은 지난 7~8월 죽을 쒔다. 7월 초에는 운송비 협상으로 시간을 허비했다. 
수도권 레미콘 업체와 지입차주로 구성된 전국레미콘운송총연합(전운연)이 우여곡절 끝에 9%대 인상안을 도출했지만, 곧바로 7월 하순부터 한 달 간 장마가 이어졌다. 
이 때문에 건설 현장 공기가 늦어지고 연쇄적으로 레미콘 등 건자재도 나가지 못했다. 여름이 비수기라지만 예상보다 ‘보릿고개’가 더 길어지면서 9월 이후 실적 과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문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로 이런 실타래를 풀어내기에는 상황 자체가 너무 안 좋다는 점에 있다. 당장 대면 비즈니스가 멈췄다. 한 대형 레미콘 업체 관계자는 “9월부터 11월까지가 성수기인데, 지난 두 달여간 너무 매출이 많이 빠져 웬만큼 해서는 빈틈을 메우기 어렵다”며 “기본적으로 레미콘이 공급과잉인데다 건설사를 상대로 대면 영업을 바짝 하기도 힘들어 갑갑하다”고 말했다. 
특히 사회간접자본(SOC) 공사도 예상보다 더 늦어지고 있다. 올 초만 해도 예비 타당성 조사 면제를 통해 빠르면 하반기에 SOC 공사 상당수가 첫 삽을 뜰 것이란 기대감이 업계에 돌았지만 지금 분위기는 싹 달라졌다.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SOC 공사가 지원 순위에서 밀리는 모양새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레미콘 불황 장기화 우려감에
신사업 투자에 눈 돌리기도

한 중견 레미콘 업체 임원은 “(정부 지원이)재난지원금 지급에 방점이 찍히다 보니 SOC도 영향을 받는 거 같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올 2분기에 바닥을 치고 3분기에 올라가는 그림 자체를 포기했다. 한 레미콘 조합 관계자는 “7~8월이 너무 안 좋았고 9월도 예상보다 좋지 않다”며 “체감으로는 3분기에 바닥을 뚫고 지하로 내려온 거 같은데 더 내려가지 않을까 걱정하는 업체가 많다”고 전했다. 중견 업체의 한 관계자는 “올 3·4분기 실적이 전년 대비 반 토막 난 곳이 수두룩하다”면서 “날씨라도 좋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레미콘경기 회복세가 더뎌지고 장기적인 불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우려감이 높아지면서 일부 중견레미콘사들은 신사업 투자로 눈을 돌리는 분위기다. 경기회복만 기다리기보다는 레미콘업계가 대내외적 악재를 타개할 대체사업 확보가 현명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가장 관심이 높은 신사업 아이템은 공장에서 사전 제작해 현장에서 조립만 하면 되는 PC(precast concrete)다. 레미콘과 연관성이 높으면서 진입장벽은 낮기 때문이다. 대표적 사례인 삼표산업은 PC시장 진출 10여년 만에 괄목할 만한 경영성과를 일궈냈다. 현장인력 부담이 커지면서 건설사들의 PC 관련 관심도 동시에 높아지고 시너지 창출 기회도 다양해졌다. 무엇보다 해마다 운반비 인상을 요구하면서 운송거부 투쟁을 벌이는 믹서트럭 운전기사가 필요없는 게 장점이다. 중대형 레미콘사 모임인 한국레미콘공업협회의 최근 정기총회 때 중대형 레미콘사 대표들의 화두도 PC사업이었다는 후문이다.
건자재 유통부문 진출도 활발하며, 성공사례로 유진기업이 꼽힌다. 인테리어·건축자재 전문매장인 유진의 에이스 하드웨어만 해도 2018년 서울 금천점을 시작으로 수도권 5개 매장을 성공적으로 운영 중이다. 2006년 인수한 유진투자증권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유진투자증권의 상반기 영업이익은 작년 동기보다 110% 폭증한 9023억이다.
아주산업도 아주호텔앤리조트(호텔), 아주IB투자(금융) 등 호텔과 금융을 아우르는 다각적 투자 행보를 통해 탈(脫)레미콘 길을 모색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레미콘 업황이 나날이 악화되면서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들도 업종 전환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레미콘 운송업자들도 어려움 가중
전년동기 대비 일감 30% 급감

이처럼 레미콘업계 전체가 수주난에 허덕이면서 레미콘 믹서트럭 운전기사들 역시 극심한 ‘일감절벽’ 상황을 맞고 있다. 역대급 긴 장마와 코로나19 재확산 여파로 건설현장의 공사 지연 사태가 거듭되면서 레미콘 주문이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믹서트럭 운전기사들의 지난달 평균 레미콘 운반 횟수는 수도권 기준 70∼80회전으로 전년 동기(100∼120회전) 대비 30%가량 급감했다. 특히 서울 등 수도권 중심부를 제외한 경기·인천 등 외곽지역은 월평균 60∼70회전으로 더욱 심각한 감소폭을 보이고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이는 코로나19 재확산 후 상당수의 건설현장이 공사를 중단하거나, 예정된 공사 일정을 지연했기 때문이다. 특히 두달 넘게 지속된 장마와 연이은 태풍도 한몫했다.
이로 인해 운전기사의 월평균 수입도 곤두박질쳤다. 수도권 운전기사들의 지난달 평균 수입은 약 400만원대로 추정된다. 이는 전년 동기 510만원보다 약 21% 하락한 수준이다. 이마저도 차량 감가상각비 등 기타 고정비를 고려하면 운전기사들이 손에 쥐는 실질 수익은 200만원도 채 안 되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수도권 소재 운송업계 관계자는 “그나마 지난 7월 수도권 레미콘사와 10%가량의 운반비 인상에 합의하면서 회생 불가능할 정도의 피해는 막았지만, 겨울철 비수기가 다가올 것을 생각하면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자 일부 운전기사들 사이에서는 △레미콘차량 8·5제 운영 개선 △운반비 추가 인상 등 대책 마련에 대한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8·5제는 지난 2016년 1월 레미콘 믹서트럭 운전자들의 ‘저녁이 있는 삶’을 찾겠다는 명분 아래 처음 시행됐다. 하지만 건설경기 침체 및 코로나19 여파로 일감이 줄어들자 자발적인 근로시간 단축은 오히려 수입 감소 등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부정적 인식이 급속도로 퍼져 나가는 양상이다.
운반비 추가 인상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레미콘업계는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이다. 레미콘업계 관계자는 “레미콘 일감 자체가 급감한 상태에서 운송사업자들의 어려움을 감안해 운반비 인상을 합의한 것인데 여기서 추가인상을 요구한다는 것은 레미콘업계로선 감당할 수 없는 무리한 주장”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델링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리모델링의 경우 기존 구조물의 뼈대는 유지하고 공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재건축보다 적은 양의 레미콘이 투입되는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레미콘 시장은 지입차주와의 갈등, 전방산업의 하방국면 등 복합적인 문제를 겪고 있다”며 “레미콘 판매 단가도 업체별 출혈경쟁으로 최근 5년간 오르지 못하고 있어, 인건비·단가의 균형을 이루는 것마저 벅차다”고 말했다. 

결국 전국 레미콘공장 매물 급증
약 100여곳 매각 추진, 레미콘 시장 이탈 가속화 

이처럼 레미콘업계의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끝내 레미콘 사업장이 대거 매물로 나오는 등 상당수 레미콘업체의 레미콘시장 이탈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100곳 안팎의 레미콘 사업장이 매각을 완료했거나, 헐값 매각을 검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전국에 레미콘 사업장이 950여곳인 점을 감안하면 10% 이상이 매물로 나오는 셈이다.
중소업체가 보유한 사업장이 대다수지만, 게 중에는 대형업체의 사업장도 포함되어 있다. A사가 세종시에 보유한 62만8099㎡(19만평) 부지의 사업장은 지난 6월 매각됐다. 해당 사업장은 골프장 및 리조트로 개발될 예정이다.
사업장 매각은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수도권 2곳, 충청 1곳, 경북 4곳, 경남 2곳, 전북 2곳 등 11곳의 사업장이 경매를 통해 매각됐다. 더러 다른 레미콘업체나 건설사에 매각된 곳도 있지만, 대부분 영업을 종료하고 문을 닫았다. 건설경기 침체로 적자경영을 견디다 못한 사업주가 결국 두 손을 든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수년간 지속된 경기침체에 올해 들어 코로나19와 장기간 장마ㆍ폭우 등의 영향으로 중단된 건설현장이 속출하면서 레미콘 수요가 확 줄었다. 건설산업의 가치사슬 중 레미콘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대한건설자재직협의회(건자회) 집계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가 가장 극심했던 지난 3월 수도권 내 건자회 회원사 현장에 출하된 레미콘은 219만8156㎥로 지난해 동월(235만6331㎥) 대비 7%가량 줄었고, 이후 4월(-8.4%)과 5월(-15%)도 가파른 감소폭을 기록했다. 비 소식이 잦았던 7∼8월에는 수도권 전체에서 하루 평균 69만여㎥의 출하 공백이 발생했다. 주요 레미콘 상장사들의 상반기 매출도 전년 동기 대비 10% 가까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앞으로다. 레미콘은 건설경기의 바로미터 격이라, 이들의 시장 이탈이 지속된다면 건설산업 전반에 타격을 입힐 것으로 우려된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현재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사를 중심으로 시장 이탈이 두드러지고 있지만, 향후 대형사들도 사업 규모를 축소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레미콘 시장의 부진은 건설산업 전반에 큰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정부 차원의 지원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IP : 222.111.205.xx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