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22 Sun
 
베트남 중부 최대의 휴양도시 다낭의 성장하는 모습을 둘러보고 나서...
2019-09-02 10:33 15
나는 지난 3월에는 10여 년 만에 기업 업무 지원차 베트남 하노이를 다녀온 적이 있다. 이번에는 내과 전공의로 열심히 근무하고 있는 작은 딸과 모처럼의 휴가를 함께 보내기 위해 가족들의 공통 일자인 6/23~27을 택하여 베트남 중부 최대의 휴양도시 다낭을 다녀왔다.
여행지로는 물 이동이 많은 지역은 최근 헝가리 다뉴브강 유람선 침몰 사건도 있고 해서 가급적 배제했고, 인터넷으로 꼼꼼히 여행사 자료와 여행 지역을 충분히 검토하여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발리, 베트남 다낭, 몽고 초원, 우즈베키스탄 5개국 중에서 고르던 중 특히, 여행지역의 안전성, 지역인과의 친근감, 여행 기간을 고려하였고, 특히, 열대지방을 가려면 우기 전에 가야 하고, 휴양과 휴식을 모두 만족하는 다낭이 좋다고 하여 선택하였다. 그리고 주변에 누군가가 베트남을 간다고 하면 하노이(북부), 다낭(중부), 호찌민(남부) 3개 도시 정도는 다녀와야 한다고 한 점, 그리고 본지 5월호에서 할롱 베이와 하노이 여행 때 차기 방문지로 다낭을 간다고 하는 부분도 선정에 영향을 준 것 같았다. 금번 여행사의 내용은 다낭을 중심으로 남쪽으로 호이안, 북쪽으로 후에(Hue)를 3박 5일 동안 돌아보는 것이다. 다낭은 휴양도시로 해변에 고급 리조트가 많고, 맛있는 음식, 주변 근교 여행지까지 최근 매력적인 여행지로 떠오르는 곳이다. 호이안은 클래식함이 멋스러운 도시, 호이안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이고, 올드 타운은 밤이 되면 수많은 홍등으로 너무 아름다운 곳이다. 후에는 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베트남 최초의 통일 국가를 이룬 응우옌 왕조의 수도였던 후에, 성채 전체(구시가지)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되었으며, 과거 찬란했던 왕조의 옛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특히, 다낭은 강과 해변을 중심으로 문화 상권이 발달하여 있다. 특히, 프랑스 리스 해변 등과 같이 세계 6대 비치라고 일컬을 정도로 유명한 미케비치는 염도가 낮고, 다금바리 생선도 많다고 한다. 주변은 한국의 부산 해운대처럼 큰 빌딩, 리조트들이 계속 건설되고 있어서, 소위 아시아 지역에서 뜨고 있는 도시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가이드는 이곳 해변은 고운 모래로 아름다운 면도 있지만, 베트남 패전 당시 부자들은 킬링필드와 같은 처형 등을 우려하여 보유한 보석을 살을 찢어서 몸에 감추었고, 신변 불안으로 보트 피플로 탈출하던 중 먼 해변에서 침몰당한 이야기, 특히, 이들을 한국 원양어선이 발견하여 구해준 이야기는 여행의 피로가 몰려온 졸음도 단번에 깨우고, 심금을 울리는 것 같았다. 원양어선 선장은 구조를 위해 많은 갈등을 느꼈다고 한다. 당시 한국은 반공법이 엄격하여 공산권 사람을 구해준다는 자체가 자신의 사상에 위협받는 일이기 때문이다. 선장은 목선에 타고 있는 사람 16명 구해주었는데, 선창 아래에서 추가로 90명이 더 나와서 무척 당황했다고 한다. 그 후 원양어선의 선체 무게를 맞추기 위해 잡은 고기 일부를 버려야 했고, 식량과 물이 부족하여 굶는 등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고 전해준다. 살아남은 베트남인들은 미국 등으로 이민을 떠나 열심히 노력하였고, 이런 와중에 개발된 것이 바로 베트남 쌀국수라고 한다. 이들은 영원히 베트남으로 돌아갈 수 없는 입장이었지만, 쌀국수에 대한 특허권을 베트남 정부와 협상하면서 많은 돈이 필요했던 베트남 정부 입장에서는 이들을 다시 베트남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들은 당시 그들의 한(恨)을 달래기 위해, 미케비치에 높이 65m짜리 해수관음상을 세웠고, 영응사(靈應寺)를 지었다. 이곳은 유일하게 입장료를 받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최근 중국이 이보다 더 높은 불상을 만들어 세계 2번째로 높은 불상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해변에서 내륙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우리의 70년~80년대를 연상하게 된다. 유통업체인 K 마트, 하이마트 정도는 가까이에서 자주 볼 수 있고, 대형간판의 70~80%는 한국말로 되어 있어 불편함이 전혀 없었다. 물가도 우리의 1/3 수준, 5성급 호텔에서 룸서비스로 배달시켜도 우리의 레스토랑에서 먹는 정도의 금액, 화폐는 동(VND)보다도 달러가 최고, 한국 돈도 가치를 인정받고 있었다, 관광지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물건을 팔 때 열 개에 1,000원, 1달러라고 권유를 한다. 특히, 아줌마 사진사가 몰래 사진을 찍고 현상하여 코팅한 것을 1,000원이라고 하여 안 샀더니 다음 이동지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쫓아와 적극성에 감동되어 오히려 3배 가격을 준 기억, 로터리 신호대기에서는 신호가 바뀐 직후 부딪칠 듯 로터리를 회전하는 오토바이 행렬을 보고는 모두 혀를 찰 정도로 감탄한다. 이번에는 여행사를 통해서 편안하게 다녀오려고 별도의 자유 교통수단은 이용하지 않았다. 여행의 묘미는 역시 야시장에서 찾을 수가 있다. 먹거리는 그 나라의 전통적인 문화를 이야기해 주고 있는데, 개구리 몸통 구이 2달러는 보신 된 기분이다. 시클로를 타고 전통거리를 둘러보았는데 눈에 들어온 하나하나는 역시 그 나라의 얼과 역사가 숨어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음식은 쌀국수가 우리와 가장 친하지만, 이외에도 반쎄오, 분짜, 짜조 등 다양한 먹거리를 접했고, 더위를 식히는 데는 연유를 듬뿍 넣어 만든 커피가 단단한 한몫을 해 주었다. 필자의 눈에는 역시 시멘트콘크리트 구조물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유적지를 돌아보면서 카이든 왕릉, 후에 왕궁 민망 황제릉, 후에 왕궁 계단 입구의 용 장식물의 벽돌과 모르타르 접착 부분들은 이미 열화가 많이 진행되어 보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석재, 대리석으로 건설된 영응사는 건전함을 보이었다. 특히, 후에의 카이든 왕궁은 유럽에서 사들인 도자기를 파쇄해서 모자이크로 벽체를 장식한 부분들은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호이안 지역에서 중국과 일본 외세 침입의 교차를 말해주는 내원교, 프랑스 식민지 시절 개척자들이 만든 역이자 휴양지인 바나힐스 테마파크에 설치된 케이블카는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고, 1,500m 위치에 설치되어 있으며, 소요 시간도 20분 정도 걸렸다. 이외에도 오행산은 대리석과 석회암으로 구성되어 있고, 서유기의 손오공이 천계에서 난동을 부려 갇히게 된 곳이 바로 이곳이란다. 내부는 천당과 지옥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역시, 지옥은 습기도 많고, 어두침침하여 사후 세계에서 가야 할 곳이 못 된다. 시내에 있는 다낭 대성당(1932년 프랑스 식민지 시절 건설)은 벽체가 분홍색으로 도색되어 핑크 성당이라고도 부르고, 현지인들 사이에는 첨탑 꼭대기에 달린 수탉 모양 풍향계 때문에 수탉 교회라고도 부른다. 여행 마무리는 마사지가 최고인 것 같다. 그런데 경험상 매일 받으면 오히려 기(氣)를 빼앗겨 쉽게 피로할 수가 있다. 끝으로, 이번 방문은 GDP가 우리보다 아주 낮지만, 국토면적은 오히려 우리보다 넓고, 자원도 풍부하고, 외세의 침입에 수많이 저항해 와서 강한 인내와 자존심, 해외 기술을 과감히 받아들여 기술 격차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모습, 커피 생산량 세계 2위만큼은 절대 내줄 수 없다는 그들의 각오도 읽었다. 우리도 노력을 게을리하면 글로벌 세계에서 영원한 2위로 밀려날 수가 있다. 실타래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정치 해법들이 하루빨리 안정화되기를 기대해본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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