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13 Thu
 
콘크리트 미라가 가능하다고 유언을 하면서 ....
2020-07-30 09:02 16
최근 YTN science에서 역사 인물 중에서 황희(黃喜)(호는 방촌) 정승(政丞, 고려와 조선 시대 문무백관의 가장 높은 수상급 관직)을 소개하고 있어서 잠시 위키백과를 찾아 정리해 보았다. 그는 657년 전인 1363년 고려 시대에 태어나서, 조선 시대 초대 태조, 정종, 태종, 세종대왕 4대 왕에 걸쳐 벼슬한 사람이다. 고려말 조선 초기의 문신, 재상이다. 고려국 성균관 학관, 조선국 판한성부사, 조선국 영의정 등을 지냈다. 20세 때 진사의 벼슬을 했고, 26세에 과거(문과)에 급제했다. 성격이 원만하여 존경을 받았고, 시문에도 뛰어났고 관료 생활 중 많은 치적과 일화를 남겼다. 사후 청백리로 규정되어 일반적으로는 청백리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아들과 사위가 저지른 뇌물수수, 간통, 부패 등 좋지 않은 물의를 빚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세종대왕의 신임으로 가벼운 처벌을 받거나 복직했다. 여러 가지 비리와 이권 청탁의 의혹이 있었음에도 국가 미래를 내다보는 정확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어 세종은 그의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를 신임했다고 기록되어있다. 우리 세대에 비추어 볼 때 누가 이분과 유사한 분인지 얼른 생각이 안 나지만 어쨌든, 이분은 참으로 운이 좋은 관료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를 요즘 역사적 인물로 재조명하는 것은 아마도 소신과 원칙을 지키고 관용을 베풀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해 본다.
우리 사회는 정치·사회적 전환기, 코로나 19를 거치면서 많은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우선 사회·문화적 면에서 보면 직장 근무 형태가 바뀐 것을 실감한다. 재택근무, 업무의 개념이 파괴되고 있다. 해외 출장, 평가, 자문회의도 화상 통화로, 교육도 가능함이 확인되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단체관광 등 해외여행이 상당히 쉬웠다. 그런데 이번에 국가들이 국경봉쇄, 항공기 착륙 거부 등을 실감했다. 그간 잘 나간다고 생각했던 여행사들이 된서리를 맞게 된다고 그 누군가 상상을 했겠는가... 항공기 조종사와 승무원 하면 한때는 꿈의 직업이었는데 지금은 집에서 휴가를 보내야 하고, 세계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국내 여행으로 방향을 돌려야 하고, 영화관, 연극 등 다중시설은 거리 두기가 필수이다. 택배도 과거 접촉식에서 비접촉으로도 얼마든지 물건 수신이 가능함을 알게 되었다. 정치적 면에서 보면 지난 6월 16일 남북한 연락사무소(한국재산) 건물을 갑자기 폭파해 황당하게 했고, 대화 불가를 선언했다. 또한, 우리 사회는 일본 강점기 시대에 부정적인 부분들을 도려내는 일도 진행되고 있다. 다시 말해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이라고 할까... 사실 이 부분은 그 당시에 바로 해야 했을 일이었는데 이제 와서 하려니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잘 안다. 한 예로, 6. 25 전쟁의 영웅 故백선엽 장군의 친일 이야기(일본 강점기 만주 군관학교 출신으로 간도 특설대 소위로 임관했다는 점)도 갑자기 들리고, 소위 친일한 정치인들의 예우를 박탈하는 법안들과 친일 반민족 행위자를 국립묘지 밖으로 이장하는 법안 발의 등이 그것이다. 결국 이러한 것을 하게 된 배경에는 역사를 바로 세워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그런 면에서 분명한 선을 긋지 못하고 정치적 쟁점 등등 속에서 좋은 게 좋은 것처럼 혼재되어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 독일같이 나치와 유대인 역사의 변환점에서 분명한 지도자의 사과, 배상 등등 국제사회 앞에서 종결을 짓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계속 미지근하게 이어지다 보니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우리 사회의 갈등 요소로 작용하였다고 생각이 든다. 나는 정치인이 아니다 보니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코로나 2차 대유행 공포가 우려되는 양상이고, 아시아 국가들의 수도에서 제2의 팬더믹까지 예고된 상황에서 이런 소식을 들으니 다소 혼란스럽기도 하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판단기준, 절차 등을 잘 정하고, 충분한 국민적 공감대와 합의가 이루어지면 못할 일도 아닌 것 같다.
각설하고, 이번 호에서는 콘크리트 미라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위키백과 사전을 통하여 알아보자. 미라(포르투갈어: mirra미라)는 화학물질 또는 춥거나 건조한 환경에 노출되어 피부와 살이 말라서 보존된 시체를 말한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영혼 불멸 사상에 따라 시신에는 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어 이를 보존하는 것이 고인의 내세에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미라를 만들었다. 그 밖에도 아즈텍, 잉카 등에서도 미라화 의식이 있었다. 아시아에서 발견되는 미라들은 독특한 장묘문화 덕분에 만들어진다. 한국이나 중국의 경우 회곽묘라 불리는 일종의 석관을 사용하는 문화가 있는데 산소와 차단된 환경이 제공되다 보니 시신이 썩지 않고 오래 보존되는 것이다. 그 밖에는 매장할 때의 풍습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현대에는 소련의 블라디미르 레닌의 시신이 미라로 만들어져 보존된 이래, 중국의 마오쩌둥, 베트남의 호찌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김일성과 김정일의 시신을 미라로 처리하여 보존하고 있다. 자연현상으로 미라가 된 시신은 알프스산맥의 빙하에서 발견된 외치(Oetzi)가 대표적이다. 또 차고 건조한 바람이 부는 안데스산맥에서는 잉카 시대에 산에 제물로 바쳐진 미라들이 발견되기도 한다. 친초로미라라는 박제와 인형의 중간 형태를 지닌 미라들도 많다. 이 밖에 북유럽이나 스코틀랜드 및 북아일랜드에서는 소위 보그피풀이라는 미라가 많이 발견되는데 이는 늪이나 습지가 많은 지역적 특성 때문이다. 늪의 화학성분으로 인해 미라가 부패하지 않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동경대 토목과 요시다 교수(1988∼1960)가 자신을 사후에 콘크리트로 매장해 달라는 유언이 유명하다. 그는 사후 시신의 안정성 확인(생체의 지방분이나 냄새가 장기간 침출을 우려 정어리를 생체대상으로 사용)을 위해 은퇴 10년 전부터 정어리와 은행잎을 포함한 몇 가지 실험을 진행했다. 그리고 본인이 정년퇴직하는 날에 상기 상황을 관찰하였는데 정어리는 냄새, 변색이 없는 미라로, 은행잎은 녹색을 그대로 유지했다. 모두 미라를 만드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자신 있게 콘크리트 채움 매장 유언을 남긴 것이다. 향후 제자들은 일본 법에 허용되지 않아 결국 묘의 받침대(台座)와 주변 기둥들을 콘크리트로 만들어주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의 연구실적인 초고강도 콘크리트, 재료 분리의 발견, 철근콘크리트 시방서 창간 등은 신화가 될 정도로 유명하고, 학자답게 본인의 시신을 콘크리트와 함께하여 영원함을 후세에 널리 알리고 싶었던 것이 아닌지... 우리 사회는 핵가족화되면서 조상의 묘를 제초 및 관리가 어렵다고 해서, 봉분이나 주변의 잔디를 고화제 콘크리트로 하는 경우를 보도를 통해서 듣곤 한다. 조상의 묘는 그간 잊힌 친지, 자손 간 정을 돈독히 하는 장소이므로 예를 다하여 경배해야 하고, 그리고 자주 찾아뵙고, 모두가 합심해서 제초·관리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지속하여야 한다. 결국, 콘크리트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열화되어 풀이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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